향수 역사

장미와 향수 역사: 고전 장미에서 현대 로즈까지

장미 분자의 발견, 그라스의 꽃밭, 코티와 샤넬, 조이와 현대 로즈 어코드까지 로즈가 향수 역사에서 바뀌어 온 길입니다.

로즈 노트 보기
로즈 향수 노트 일러스트

향수 역사에서 로즈는 오래된 천연 원료이면서, 현대 조향이 어떻게 “꽃을 다시 조립하는 기술”이 되었는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그라스의 꽃밭, 코티의 첫 향수, 샤넬의 추상 플로럴, 조이의 호화로운 꽃다발, 그리고 현대 로즈 어코드가 한 줄로 이어집니다.

장미를 다시 조립한 분자들

향수 안에 들어가는 장미가 한 번 크게 바뀐 시점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입니다.

1900년 무렵 조향과 화학이 본격적으로 만나면서 장미 향을 이루는 성분이 8개 식별되었습니다. 그 수는 1950년대에 20개, 1960년대에 50개로 늘었고, 20세기 말에는 400개를 넘어섭니다.1 한 송이 꽃 안에 그렇게 많은 분자가 어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조향가들이 가장 먼저 알아본 두 분자는 페닐에틸알코올(phenylethyl alcohol)게라니올(geraniol)입니다. 한 향수 교과서에서는 "장미꽃 그룹은 이 두 성분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못박습니다.2 이후 시트로넬롤(citronellol), 시네올(cineole)계 분자, 후속 합성 머스크들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 그리고 이 합성 분자들 대부분이 20세기 첫 10년 안에 정착하면서3 — 조향사들에게 "장미를 다시 조립할 수 있는 향의 언어"가 생겼습니다.

이 변화는 향수의 캐릭터를 바꿨습니다. 합성 분자들은 천연 원료보다 더 일정하고, 더 오래 가고, 자연에는 없는 형태의 장미까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장미를 따는 풍경"이라는 시적인 광고 카피가 정작 합성 향료로 만든 향수에 사용되는 묘한 시기도 있었다고 한 향수 저자가 책에 적어 두었습니다.4

향수 역사에 새겨진 장미

1880년대 — 그라스의 숫자

1880년대 자료에 따르면 칸(Cannes)·그라스(Grasse)·니스(Nice)의 꽃 농장은 연간 장미꽃 50만 킬로그램, 장미수 10만 리터, 장미 오일 1,200 킬로그램을 생산했습니다.5 그라스가 한때 "세계 향료의 수도"로 불린 배경에는 이런 규모가 있었습니다.

1904년 — 코티의 첫 향수, 라 로즈 자크미노

코르시카(Corsica) 출신의 프랑수아 코티(François Coty)는 그라스의 향료 회사에서 일을 배운 뒤 파리로 돌아와 자기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고, 첫 작품의 이름이 장미였습니다 — 라 로즈 자크미노(La Rose Jacqueminot).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가 디자인한 병에 담긴 이 향수가 성공하면서, 향수가 "예술 + 산업"이 되는 현대적 시대의 출발점이 됐다고 평가됩니다.6

1921년 — 코코 샤넬이 거절한 장미

향수를 만들기 위해 그라스의 화학자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를 찾아간 샤넬(Coco Chanel)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 "장미나 은방울꽃의 힌트는 원하지 않아요. 작곡된 향수를 원합니다."7 보가 알데히드(aldehyde)를 시험한 1번부터 5번, 20번부터 24번 시리즈 가운데 샤넬이 5번을 골랐고, 그 향수가 샤넬 넘버 파이브(Chanel No 5)가 됐습니다. 같은 시기 향수계가 장미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거꾸로 보여 주는 일화입니다.

1930년 — 대공황 한가운데의 조이

세계 경제가 무너지던 해에 발매된 조이 바이 장 파투(Joy by Jean Patou)는 "당시 가장 비싼 향수"로 불렸습니다. 핵심은 그라스의 5월의 장미(May rose, Rosa × centifolia)와 재스민(jasmine)을 극단적인 농도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8 한 평론가는 조이를 두고 "장미·재스민·일랑(ylang)·튜베로즈(tuberose) 어느 하나의 향이 아니라, 꽃이라는 개념의 플라톤적 이상"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9, 향수에서 장미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습니다.

1995년 — 살아남은 불가리아의 장미 골짜기

한 향료업자는 책에 이렇게 적습니다. 1995년 시점에 불가리아의 장미 골짜기는 거의 무너져 있었고, 외국인 자격으로는 공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옛 증류기들은 "여전히 장미 향이 살짝 배어 있었다"고.10 오늘 우리가 만나는 불가리아 로즈 향료는 그 시기에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흐름의 결과입니다.

장미가 만드는 분위기의 폭

조향사들에게 장미는 종종 "최고의 하트 노트"로 불립니다. 한 향료 작가는 "로즈 앱솔루트는 다른 어떤 오일과도 섞이고, 다른 노트의 약점을 덮어 주며, 블렌드가 어긋났을 때 장미를 더 넣으면 종종 해결된다"고 적었습니다.11 그래서 같은 로즈 노트라도 다른 노트와 만나면 모습이 크게 바뀝니다.

장미는 향수의 가운데를 잡아 주는 노트로 가장 자주 쓰이고, 위로는 시트러스·과일과, 아래로는 머스크·우드·앰버와 만납니다. 향수 안에서 "꿀처럼 부드럽게", "기억의 파우더처럼", "갓 꺾은 줄기처럼", 또는 "와인처럼 어둡게" 등장할 수 있는 폭이 그래서 가능합니다. 향수에서 장미가 어떤 결로 들리는가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향 느낌 페이지에서 따로 다룹니다.

장미는 왜 늙지 않는가

장미가 가장 오래된 향료 중 하나면서 동시에 가장 자주 새로 변주되는 향료라는 사실이, 향수에서 장미가 늘 새롭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같은 단어 뒤에는 다마스크와 센티폴리아가 있고, 그 뒤에는 시라즈에서 카잔리크까지 1,000년이 넘는 무역로가 있고, 더 뒤에는 1900년 이후 400개로 늘어난 분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향수에서는 갓 꺼낸 차상자처럼, 어떤 향수에서는 검은 와인처럼, 어떤 향수에서는 막 비누에서 나온 살결처럼 들립니다.

"여왕의 꽃"이라는 한 줄보다, 장미가 향수 안으로 들어오는 길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는 편이 사실 더 흥미롭습니다.

[1] Jean-Claude Crisp · Jean-Claude Ellena, Perfume: The Alchemy of Scent, 합성 분자 발달사. 1900년 무렵부터 20세기 말까지 장미 향 성분의 식별 수가 8개에서 400개 이상으로 늘어난 흐름을 확인했습니다.

[2] Jean-Claude Crisp · Jean-Claude Ellena, Perfume: The Alchemy of Scent, 향 분류 — Flowers / Rose flowers. 페닐에틸알코올과 게라니올이 장미꽃 그룹을 특징짓는 핵심 분자로 설명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3] Jean-Claude Crisp · Jean-Claude Ellena, Perfume: The Alchemy of Scent, 합성 분자 발달사. 20세기 초 합성 향료와 머스크 계열이 정착하며 천연 장미를 넘어서는 조향적 장미 표현이 가능해진 배경을 확인했습니다.

[4] Mandy Aftel, Fragrant: The Secret Life of Scent. 합성 향료 시대에도 장미 수확과 자연 이미지를 향수 광고와 문화적 상상력에 끌어오는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5] George William Askinson, Perfumes and Their Preparation, 그라스 꽃 농장 통계. 1880년대 칸, 그라스, 니스 지역의 장미꽃·장미수·장미 오일 생산량을 확인해 그라스 향료 산업의 규모를 설명하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6] Mandy Aftel, Essence & Alchemy, François Coty와 René Lalique 단원. 코티의 첫 향수 La Rose Jacqueminot, 랄리크의 병 디자인, 향수가 예술과 산업을 함께 갖춘 상품으로 변해 간 흐름을 확인했습니다.

[7] Susan Goldman Rubin, Coco Chanel: Pearls, Perfume, and the Little Black Dress, Chanel No 5 일화. 샤넬이 단순한 장미나 은방울꽃 향보다 작곡된 향수를 원했다는 일화를 확인했습니다.

[8] Lizzie Ostrom, Perfume: A Century of Scents, Joy by Jean Patou 단원. 1930년대 Joy가 그라스의 5월 장미와 재스민을 극단적으로 사용한 고가의 플로럴 향수로 소개된 맥락을 확인했습니다.

[9]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A–Z Guide, Joy 평. Joy를 특정 꽃 하나가 아니라 꽃이라는 개념의 이상에 가깝게 해석한 비평을 확인했습니다.

[10]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The Tears of Christ" 항목. 1995년 무렵 불가리아 장미 골짜기의 어려운 상황과 오래된 증류기에 남아 있던 장미 향 묘사를 확인했습니다.

[11] Mandy Aftel, Essence & Alchemy, "Rose" 항목. 로즈 앱솔루트가 여러 원료와 잘 섞이고, 블렌드의 약점을 덮거나 균형을 다시 잡는 하트 노트로 쓰일 수 있다는 설명을 확인했습니다.

로즈를 다른 관점으로 읽기

향 문화장미의 예술과 문화미술, 문학, 상징, 종교, 사랑, 권력과 의례 속 장미를 읽습니다. 향 원료장미가 향수가 되는 길장미 정원, 품종, 향의 다양성, 추출과 생활문화를 원료 관점에서 봅니다.